PROJECT 1
August 22, 2025




수연은 30여장 되는 사진들을 단숨에 시간 순서대로 나열할 수 있었다.
“이게 처음 찍은 사진이고, 이게 맨 처음 연애했을 때, 남편이 살던 엄청 작은 집이었고,
이건 2023년 제 생일인데 이 때 이태원 사고가 난 날이었어요. 그래서 더 기억하고 있어요.
이건 황학동에서 오토바이 샀을 때. 이건 남편 퇴사 기념으로 식사하던 날.
제가 처음 이사했던 집에서. 도쿄여행. 이건 교토에서 바다에 갔을 때, 이건 태국 여행, 이건 제주도 살 때,
일본 고향에 갔을 때, 작년 겨울에 시위에 나갔을 때 ...
개인과 집단의 역사를 넘나드는 일들이 사진으로 꿰어져 눈앞에 대롱대롱 했다.
나는 수연이 비슷한 구도의 사진들의 실제를 모두 빠짐없이 기억하는 마음과 그 모든 순간에
수연과 재필이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에 새삼스런 감정이 들었다.
정수연/애니 청은 인물을 기록하는 렌즈 베이스 작업자이다.
그는 인물을 관찰하고 자신만의 일기로 기록하는 사람이다.
그는 자신의 가장 진실한 피사체로 남편/재필의 사진들을 한 데 모았다.
그리고 사진이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해달라고 했다. 아주 호탕한 자신감처럼 느껴졌다.



[민하] 평소에도 인물 사진을 많이 찍으시는 건, 수연님의 어떤 지점과 인물 사진의 어떤 지점이 뭔가 딱 맞는 구석이 있는 거잖아요.
수연님은 그게 무엇인지 찾으셨나요?
[수연]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.
그 다음에는 내가 전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사진을 찍으면 내가 마음먹고 움직이는 대로
이 사람을 조금 다르게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전지전능한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.
조금 독재적이기도 한데 결국에는 그 선이라는 게 크게 없는 것 같아요.
나를 위해서 찍는 건지, 남을 위해서 찍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고. 나도 남도 느끼는 게 많더라고요. 결국에는.
[민하] 사람을 찍을 때, 이 사진이 그 사람의 마음에 들지 생각한 적 있나요?
[수연] 저는 오히려 신경 안 쓰는 편인 것 같아요. 결과물에 대해 아예 생각을 안 하고,
사진은 제게 의미부여에 가깝기 때문에 순간을 남긴다고 생각하고, 흔들리거나 얼굴이 제대로 안 나와도
이렇게 나왔네- 하며 그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.
[민하] 부러워요. 엄청 쿨하시네요.
[수연] 사진이 좋아서 그냥 찍는 거고, 찍다 보니까 계속 쌓이고.
그러니까 제 강점은 잘 찍는 것보다 꾸준히 오래 찍고,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요.



[민하] 일로 사진을 찍을 때와 일상의 사진을 찍을 때. 수연님의 자세는 어떻게 다른가요?
[수연] 제 마음가짐이나 접근 방식은 똑같은데, 그 사람의 에티튜드가 다르니 완전히 다른 사진으로 나와요.
이 결과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 보일 거라는 부담감이 있으면 아무래도 사람이 굳을 수가 있잖아요.
근데 촬영이라는 의식이 별로 없고 길 가다가 음식점이 있어서 밥을 먹고, 그게 끼니가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찍는 것 같아요.


[민하] 일상의 순간에서 카메라를 드는 순간에, 그 감각은 어떤 것인가요?
[수연] 이 시간이 지나가버릴 것 같을 때.
혹은 이 공간 자체가 낯설다고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.
오히려 오늘따라 집이 달라 보일 때.
갑자기 낯설고 생경한 느낌을 받을 때, 지금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.
사람마다 눈이 다르고 카메라의 눈도 다르니까, 카메라의 눈을 빌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봤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요.
[민하] 순간에, 카메라는 어디에서 나오나요?
[수연] 집에 있을 때는 책상 위에.
밖에 있을 때는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올림푸스 뮤가 나와요.
청바지 주머니보다 작거든요.



[민하] 두 분이 닮았다고 생각하시나요?
[수연] 맞아요. 그렇대요. 그리고 더 닮아지는 것 같기도 해요.
처음에 만났을 때도 조금 닮았는데,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옷장도 공유하다보니까
계속 비슷해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. 이미지가 진짜 좀 비슷하고, 체형도 좀 비슷하고.
아직도 늘 그런 생각을 해요. 너무 둘이 비슷한 구석도 많고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죠.
남매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진짜 많아요.
[민하] 그럴 때 혹시 거짓말해보신 적 있으세요?
저는 제가 찍은 친구랑 자매로 오해받으면 그냥 그렇다고 해요. 그 상황을 즐기면서.
[수연] 있어요.

[민하] 만약 이 사람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가요?
[수연] 제 남편은, 제가 사진을 대하는 태도랑 비슷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인 것 같아요.
제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미화시키기 위해서예요.
제가 살고 있는 인생이 지나고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는 작업이 좋거든요.
그래서 사진을 찍는데, 제 남편은 어딜 가도, 뭘 해도, 항상 그 순간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해요.
예를 들어 집 앞에 슈퍼 가서 장 볼까 이렇게 하면, 노을 지는 6시에 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가자.
이런 식으로 그 순간에 우리가 항상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거든요.
그게 진짜 제일 큰 장점인 것 같아요.
근데, 그게 저를 위해서 그렇게 해주는 것도 너무너무 좋지만,
자기가 좋아서 하는 사람이 저는 더 찾기 드물다고 생각하거든요.
그런 점에서 제가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.
[수연] 사실 로맨티스트가 되는 길은 되게 험난하거든요.
그냥 쪼리 신고 걸어가면 되는 슈퍼를, 더 간단한 길을 피해서 굳이 6시에 자전거 타고 가는 거잖아요.
저는 그걸 더 굴곡이 있다고 느끼거든요.
하지만 지나보면 더 천천히 제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,
마치 제가 남편이 끄는 수레에 탄 것처럼 느껴졌어요.
울퉁불퉁하지만 같이 움직이면서 끌고 가는 그 느낌이 좋아서.
[민하] 저는 수연님이 로맨티스트의 길이 더 힘든 길이라는 거를 이해하는 게 저는 더 신기한 것 같아요.
두 분이 닮으신 게 그런 건가 봐요.
(달그락 수레 소리)



[민하] 남편 분은 수연님을 어떻게 소개하시나요?
[수연] 저를 바깥양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가장이라고 부르기도 해요.
제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직설적인데, 저의 장점이자 단점인 그 지점을 엄청 좋게 봐주고 사람들에게 잘 이야기해줘요.
길을 가다가 뭔가를 흘리거나 가방을 잘 두고 다니고, 사소한 것에 신경을 못 쓸 때가 많아요.
그럴 때, “수연이는 큰 일 해야 되니까 이건 뒤에서 내가 줍고 갈게. 너는 큰 것만 신경 써” 이렇게 말해요.
[민하] 남편분도 수연님의 사진을 찍으시나요?
[수연] 찍어요. 근데 못 찍어요 잘.
저는 항상 초점이 인물에 맞춰져 있거든요.
표정이나 행동을 들여다보고 찍는데 제 남편은 저를 풍경 안에 있는 사람으로 찍어서 제가 잘 안보여요.
그러니까 그 장면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. 그래서 더 넓고 설명할 게 많은 사진들이고 그래요.



(마 주)보기 투 명 한 얼굴, 투명한 표정,
투명 한 얼굴, 투 명한 표 정.
반딱이는 사진 위에 비치는 투명한 표 정.
그 표 정을 진심으로 바라보는 또 다 른 표 정
표정 사 이 를 항 해 하 기

[민하] 재필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?
[수연] 바다 갔어요. 말복이 지나기 전에 가고 싶다고.
오늘 있었으면 진짜 시끄러웠을 텐데.
PHOTOGRAPHER : ANNIE CHUNG
SUBJECT : JEFF CHOI
EDITOR : MINHA PAK